사노 누이

NuiSano_

Nui Sano

서양화가. 1932년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에서 태어남. 1950년대 파란색을 기초로 한 작품으로 ‘파랑의 작가’라고 불리어짐. 1955년, 조시비미술대학(여자미술대학) 예술학부 서양학과 졸업. 그 후 조교, 주임강사, 조교수, 교수, 대학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제 16대 조시비미술대학(여자미술대학) 학장으로 임명. 현재, 개인전과 그룹전 등으로 작품 발표. 1986년과 2011년에는 紺綬褒章 정부 표창을, 2012년에는瑞宝中綬章 수상. 그 밖에 수상경력 다수.
photo masahiro sanbe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한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파랑의 작가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가인 동시에 반 세기 이상을 조시비와 함께 보낸 교육자 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 대한 동경으로 본격적인 그림의 세계로 들어간 이래 60년이 흐른 지금.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땅에 발을 내딛게 된 창작과의 만남이 인생의 반을 채워간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는 삶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은 태어나고 자란 아오모리현 에서 벗어나 도쿄, 그 다음 파리로 까지 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13살, 전쟁이 끝난 무렵, 외국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 졌고 그 중에서도 나는 파리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50년대의 상황 속에서 갑자기 파리로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화가가 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책임한 이야기지요(웃음)
그런 여러한 경위로 우선 조시비에 진학을 결심하고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조교로서 학교에 계속 남게 되었고 25살에는 결혼을 해 육아에 전념하며 그림을 계속 그리던 중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습니다. 결국, 처음 파리의 땅을 밟게 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37살의 나이였고 지난 인생을 떠올려 보면 물론 좌절도 있기는 마련, 곤란했던 상황에서는 반드시 주변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술가는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왕래하는 시끌벅적한 집에서 자란 이유 때문일까요. 덧붙여 말하자면 주변인들의 도움과 관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별 의심 없이 사람들을 믿어버립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제 형제들 모두가 그런 성격입니다.
그림으로 상을 받으려는 야심도 없었습니다. 목표를 그 곳에 두어버리면 괴로울 때가 더 많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작풍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저는 ‘파랑’을 기초로 그림을 그린 ‘파랑의 작가’라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의식적으로 주장했던 부분입니다. 단순히 “화가입니다”라고 명함을 보여준다면 저를 기억하기 힘들테니까요.
편집자였던 남편도 대명사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고 옛날부터 파란 그림만 줄곧 그려왔기 때문에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천연의 파랑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하늘에도 바다에도 색은 없습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빛이 파란 것 일 뿐. 제가 좋아하는 것도 그런 투명한 파랑입니다. 때문에 여러 번 덧칠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파란색을 채색할 때는 기분이 좋고 마음도 편합니다. 다른 색깔과는 다르게 파랑은 망설임 없이 붓이 움직이고 파란색 한가지 만으로도 모든 표현이 가능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괴로움을 말한다면, 정신 없이 바쁠 때나 육아로 분주할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자신을 캔버스로 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선을 하나 그어도 그것이 그림이 됩니다. 대신에 선을 하나 그을 캔버스를 앞에 둘 때까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애를 돌 볼 때도 남편과 텔레비전을 볼 때도 나 자신을 가두지 않고 한결같이 작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생이 고생 뿐이라고 생각 해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즐기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나요. 또한 그림 그리기를 즐겁게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그릴 수 있을 거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건강 상태.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이 움직여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마다 ‘나답게,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라는 생각만 가득하지요. 피카소가 “내일 그리는 그림이 가장 멋있을 것이다”라고 명언한대로 아무리 그려도 만족하기 힘듭니다. 그림이란 정체불명이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림의 매력.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한걸음씩 계단을 오르면 됩니다. 정체불명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기쁨입니다.

야마구치 유코

yamaguchi
Yuko Ymaguchi
코우치현출생. 예술학부 산업디자인과(현:디자인・공예학과) 졸업. 주식회사 산토리 입사후, 1980년부터 헬로키티의 3대째 디자이너. 여러가지 변화를 키티에게 부여해, 세계 70여개국에서 연간 5만종류의 상품이 판매되는 캐릭터로 성장시켰다. 스스로 고찰한, 산리오샵을 순회하는「사인회」는 해외를 포함, 1000회를 넘는다. 국내외의 디자이너,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음.

주식회사 산토리에서 디렉터겸 제너럴매니져로써 활약하고 계신 야마구치 유코씨는, 죠시비의 산업디자인과(현:디자인・공예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3대째 헬로키티의 디자이너로써, 일본의 캐릭터 디자인의 새로운 매력을 사회에 널리알려, 새로운 마켓을 창출해낸 야마구치씨에게 이야기를 여쭈었습니다.
전체가 함께 생각하는 집단

Q> 어떤 계기로 산리오에 입사하셨습니까?
A> 취직난의 시대, 대학의 취직과에 구인모집 종이가 딱 1장 붙어있었는데, 그것이 산리오였어요. 회사설명회에 가니, 사장 스스로가, 산리오는 상품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사원 전체가 생각하는 집단이예요, 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Q> 어떤 경위로 키티의 캐릭터를 담당하게 되었습니까.
A> 키티담당의 2대째가 퇴사했을때, 3대째를 정하기 위해 콘테스트가 있었는데, 우선 키티는 과연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키티가 장래 되고 싶은것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만,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그랜드피아노를 치고, 흐뭇하게 보고있는 부모님이 있고. 키티의 피아노실력은 한 손가락으로 쳐보는 정도란 설정을 해서, 피아노가 집에 온 날의 이야기를 생각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Q> 거기서부터 어떻게 30년 가까이 인기 있는 캐릭터로 변신시켰습니까?
A> 어느날, 레코드점 앞을 지나갈 때에 신인가수가 캠페인을 하고 있는것을 보고, 그렇다! 나도 가게앞에서 키티를 잘 부탁합니다라고 일러스트를 그려서, 사인회를 하자고 생각하게 된겁니다.

Q> >그 사인회를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네요.
A> 지금도 사인회에 오신분들께서 많은 힌트를 주시고 있습니다. 일본전국, 최근은 해외도 포함해서 1년에 40회정도 하고 있습니다. 사인회에 오신 분들의 마음에서 멀어져선 안된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지금과 같이 인기있게 된것은 언제쯤부터 입니까?
A>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키티굿즈를 현지생산하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에 1년간 거주했을때, 미국의 문화라던지 생활습관이나 소재가 되는것을 키티용으로 아주 많이 그려두었습니다. 그것들을 디자인해서 상품화한 것이, 1985년 가을에 처음으로 사내 제일의 매출액이 되었답니다.
누군가와 말하고 있을때 번뜩이다

Q> 어떻게하면 팔리게 되는걸까요.
A> 언젠가, 남자애지만 키티의 흉내를 내어 리본을 하고있는 곰친구를 만들었습니다. 양친은 키티의 집에 그애를 맡기고 뉴욕에 전근하게 되고 말았다 같은. 그것을 [이치고신문]에 냈더니 큰 반영이 있었답니다. 스토리가 있는것에 의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Q> 스토리가 중요한것이네요. 역시 애정이 들어가게 되네요. 그 후의 전개는 어떻게 되었나요?
A> 고교생으로부터 자신이 가지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모노톤 패션의 시대이었기 때문에, 모노톤으로 하면 지금까지의 것과 차별화되어, 어필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1987년에 고교생을 위한 수량한정의 테스트판매를 했는데, 발매와 동시에 순식간에 다 팔려버렸답니다.

Q> 지금은 성인여성도 구매층으로 되어있네요.
A> 1996년의 가을쯤, 그 고교생 대상의 상품이 OL에게 팔리고 있다라고 들었습니다. 그때쯤, 제가 자주가는 의류브랜드의 사장이 「최근 핑크가 잘팔리고 있다」라고 가르쳐 주어서, 핑크의 상품에 주력하고 있던시기에, 휴대전화 케이스나 휴대폰줄등의, 핑크색이 날개 단 듯 팔렸습니다. 지금은 어라운드서티세대의 분들도 강력한 고객입니다.

Q> 이정도로 하나의 캐릭터를 진화시켰다는 것이 가능한것은 왜일까요?
A> 다음은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한게 아니라, 무언가의 계기에 번뜩하고 떠오르는겁니다. 캐릭터라지만 키티를 인간과 다를게 없다라는 곳까지 이끌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사람에게 제 꿈을 말하면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체력승부로 힘내겠어요.

아이바 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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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ko Aeba
1998년 단기대학부 조형과 정보디자인졸업장밀 일을하고 싶다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일류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을 하고있는 아사코상,
자생당에서 7년정도의 경력을 쌓았으며 LLOYD&CO에서 아트디렉터로써 활약하고 있습니다.

Q> 아사코상에게 있어서 NY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디자이너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뉴욕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살고있는 곳은 상당히 일적, 디자인적으로 엄격하고 꼼꼼한 도시이기도 하지만,무엇인가 달성했을때 모든사람들이 기뻐해주며 인정을 받을 수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케일이 큰 일들이 많은것 또한 매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의 브랜드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 또한 뉴욕이기때문에 할 수 있는 작업이므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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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의 일의 내용을 말씀해주세요.
A> 패션과 향수를 중심으로하는 LLOYD&CO라는 디자인사무실에서 일을 하고있습니다.
향수의 전반적인 패키지 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제품의 브랜드 명칭과 상표를 설정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여러 고객으로부터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도 다양하게 즐기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Q> 자생당에서 7년간을 일한 후, 어떤방식으로 NY에 취업하셨습니까
A> 영어는 거의 못해서 처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는 불합격하였습니다. 지금의 회사쪽에도 흥미가 많았기때문에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포토폴리오를 갖고 면접을 보았으며 그 후 인턴쉽에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주3,4회 정도 일을 하였습니다.

Q> 정규직으로 채용되기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A> 정말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정규직으로 되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언어적인 능력과 사람과의 대화기술,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일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제일 중요한것은 좋은 디자인을 이 세계에 남기고 싶다라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티스트가 아닌 디자이너이므로 식품의 시각적인 부분을 어떻게 전달해야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기 싫어하는성격이 강합니다. 자생당에 채용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어시스턴트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채용형태라도 디자인이라는 틀에서 작업을하기때문에,어시스턴트디자인도 정규직디자이너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미국도 그런점에서는 똑같습니다.

Q> 인턴쉽이라는제도에대해서 알려주세요.
A> 인턴쉽으로 온 학생중에 소질이뛰어나거나 저희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채용을 하는방식입니다. 학생들의 면접도 담당하고 있으며 한번 알게된 학생중에서 새로운 작품이 생기면 연락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학생의 경우를 보며 의욕과열정을 느낄 수 있고 이것 또한 플러스요인이된다고 생각합니다.

산마이토우 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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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omi Sanmaido
주식회사 폽프콘칩 디자이너
2007년 예술학부 디자인학과 비쥬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코스 졸업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를 잘할수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만들고 싶은것을 확실히 제안해야한다

디자인 사무실에 입사한지 6년차인 디자이너 입니다.
제가 지금하고 있는 패키지디자인은 일주일안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2~3개월동안 완성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식료품자료를바탕으로, 고객과의 상담을통해서 디자인을 제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패키지, 소책자, 카탈로그 등의 작업이 많은 편입니다.
저는 어렸을적부터 패키지에 관심이있어 고등학교3학년때부터 라벨을 수집하여 라벨컬렉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녹차한정라벨을 모아 파일형식으로 만들어 지금의 일에도 유용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디자이너였기때문에어렸을적부터 미술관련직업을 갖고싶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를 중시하라

고등학교부터 조시비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영상 제작을 하는 동호회를 만들어 영상 제작 활동을 꾸준히 해 오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창시절에 여러 분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배우도록 노력했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과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고객을 상대할 경우 대화의 기술이 좋은 것 또한 하나의 중요한 플러스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경험은 중요한 플러스가 된다

대학시절 취업 설명회에서 나온 기업의 임원분께서도 디자인만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또다른 무언가를 갖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은 디자인을함에있어서 자신이 디자인한내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을 함에 있어서 직접자신이 경험을 하는것 또한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자기가 하고싶었던 일과는 다른곳에 취업이된다고해도 그곳에서의 경험은 자신이 살아감에 있어 그리고 디자인일을 하면서도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분야의 일을 해보면서 그 분야에대한 재미와 어려움을 알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디자인이라는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나는 이것을 하고싶다라는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일에 도전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토와코 쿠와지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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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ko Kuwajima
주식회사 삼싱에리스 미술디자이너
단기대학 조형과 회화교실(현 단기대학부 조형학과) 1992년 졸업 쿠와지마씨는 미술디자이너 칸타케 츠네오씨의 밑에서 나카지마 테츠야감독의 광고 작품 등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주된 작품으로 나카지마 감독 연출의 광고「JRA」,「오후의 홍차」와 영화「불량 공주 모모코」「파코와 마법 동화책」등이 있습니다.
「불량 공주 모모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제59회 아사히 영화콩쿠르 미술상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과「파코와 마법의 동화책」은 제32회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미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kuwajima_works01_0「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시비였습니다.
그림을 좋아했는데, 특히 이야기에 따른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배역을 맡은 사람의 배경이 이야기에 맞게 표현되고 있는 것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영화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그림을 그리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 때부터 항상 일의 시작점을 추구했으며, 미술스텝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거기서 스승이신 칸타게씨와 만나, 20년 이상의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조수로 있으면서 보고 흉내내면서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25살 때부터 영화와 광고를 맡게 되었습니다.
광고는 일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매체에 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무대든 프로모션 비디오든 어떤 것이든 가능합니다.」

쿠와지마씨는 많은 기술집단과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술의 현장에는 큰 도구를 맡고 있는 사람부터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현장에는 감독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합니다.
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하면 넓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감독과 일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카지마 감독과의 일은 매우 재미 있습니다.
감독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어서, 그로 인해 저도 자극을 받고 스태프도 자극이 됩니다.
그 생각들로부터 지고 싶지 않기에 더욱 재미있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에 없는 자신이 생각한 인물설정이 뽑히면 기쁩니다.」

마나코 미호

manako
Miho Manako네리마구미술관 학예원

2009년 대학원 미술연구과 석사과정
예술문화전공 예술표상연구영역 졸업


” 발놀림이 가볍네요”

중학교 시절 미술과 역사를 좋아했고 이론공부와 함께 아트를 만드는 쪽도 알고싶어서 실기 공부가 가능한 조시비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교육보급 담당으로 기술지도도 하고있는데 죠시비에서 유화, 디자인, 애니메이션 등의 수업을 받은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학교 시절 2,3일에 1번은 전시회에 간 것 같습니다. 박물관학수업때 전시회 감상 노트필기 과제가 있었는데 전시내용, 관람순서, 벽면표시를 기록하고 전시를 잘 보이게 끔 평면도를 그리는 등 매우 재밌게 과제에 임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기록했습니다.

좋아하는 미술관은 미토, 메구로미술관이고 최근엔 박물관도 재밌어서 자주 갑니다. 고미술도 현대미술도 좋아합니다. 갤러리나 이벤트도 자주 가서 “참 발놀림이 가볍네요” 라고 종종 듣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학교때 전시회, 책, 연극, 영화, 음악등 많은것을 듣고 보아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치코쯔마리의 「대지의 예술제」전시 볼런티어도 몇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접객은 싫어하기도 하고 또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설명을 해 내어서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미술작품이나 컬렉션은 “사용할 물건”

네리마미술관은 2008년 대학원과정 재학때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부때 학예원자격을 취득하고 석사 2학년때 취직활동을 했습니다. 지금 일은 모집응모로 찾았고 현재 계약직 4년차입니다.
현재 교육보급담당과 전시회기획을 하고있습니다. 교육보급은 전시관련 이벤트와 지식과 기술을 알리는 미술강좌, 워크샵기획 및 학교연계 프로그램 (단체관람, 시설견학, 일터체험) 이 있습니다.
학예원 하면 큐레이터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지금 일에는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 (교육보급) 의 역할이 있습니다. 저는 이점에 흥미를 느낍니다.
미술작품은 자료이기도 하고 또한 사용할 물건이기도 합니다. 이것들을 보고 무언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